1. “문화‧라이프스타일 서점” 키워드로 읽는 성품서점의 탄생과 철학
대만을 대표하는 성품서점(誠品書店, Eslite Bookstore) 은 1989년 타이베이 둥취(東區) 골목의 60평 남짓한 공간에서 시작됐다. 창립자 우칭춘(吳清友)은 “책은 사람을, 사람은 도시를, 도시는 다시 문화를 만든다”는 신념 아래 24시간 서점·전시·라이프스타일 복합 공간이라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모델을 도입했다. 쇼핑몰에 서점을 임차해 운영하던 기존 형식 대신, 서점이 주인이 되고 패션·음식·음악·디자인 숍을 “테넌트”로 초대하는 역발상을 택한 것이다. 그 결과 성품서점은 독서와 소비, 문화와 여가를 한자리에서 해결하는 ‘타이베이의 거실’ 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매장 동선은 갤러리식 일방통행 구조로 설계해 방문객이 자연스럽게 전시를 보고, 책을 만지고, 로컬 브랜드 상품을 체험하도록 유도한다. 서가 배열 역시 베스트셀러보다는 “사유의 깊이”를 기준으로 장르를 배치해, 독자에게 ‘우연한 발견(Serendipity)’ 을 경험하게 한다. 이처럼 철학 → 공간 → 동선 으로 이어지는 치밀한 기획은 성품을 아시아 서점 생태계의 게임 체인저로 만들었다.
2. 24시간 영업과 문화 이벤트 — “도시의 불을 끄지 않는다”
1999년 둥취 본점이 대만 최초 24시간 서점으로 전환되자, 밤샘 독서와 심야 공연을 즐기려는 젊은 층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성품은 단순한 심야 영업을 넘어 365일 문화 프로그램을 지속했다. 예술가 토크, 인디 밴드 미니 콘서트, 차(茶) 테이스팅 클래스, 소수언어 시 낭독회까지 — 하루 평균 30여 개 이벤트가 매장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 이런 운영 방식은 ‘서점=조용한 공간’이라는 통념을 깨고, **“책을 둘러싼 모든 행위가 문화다”**라는 메시지를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특히 야간 시간대 매출의 40 % 이상이 음료·문구·디자인 소품에서 발생해, 서점 비즈니스가 서가 매출 의존 구조를 극복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24시간 조명과 잔잔한 재즈 선곡은 여행자와 직장인의 휴식처가 되었고, 대만 문화부는 성품을 “도시 야간 경제의 롤모델”로 공식 선정했다.

3. “큐레이션 4.0” — 서가부터 브랜드까지, 성품식 콘텐츠 디자인
성품서점의 큐레이션은 “상품→전시→브랜드→도시”의 4단계를 거친다. 첫째, 상품 큐레이션. MD팀은 매일 1만 권 이상의 신간 데이터를 분석해 “인문·예술·디자인·자연친화” 네 축으로 선별한다. 둘째, 전시 큐레이션. 매월 주제를 바꾸는 ‘책+아트 콜라보’ 섹션에서는 가구 디자이너가 만든 서가, 플로리스트의 드라이플라워, 현지 세라믹 공방 작품이 책과 한 프레임 안에 배치된다. 셋째, 브랜드 큐레이션. 성품은 자체 PB(Private Brand)로 향수, 문구, 차(茶) 라인업을 제작하고 ‘읽는 향수’, ‘활자 노트’처럼 책의 기능을 확장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내세운다. 넷째, 도시 큐레이션. 2010년 이후 지점마다 지역성(성장 산업·역사·생활권 데이터)을 분석해 ‘타이베이 음악책방’, ‘타이중 그린라이프점’ 같은 콘셉트형 매장을 설계했다. 이 다층적 큐레이션 시스템은 성품을 단순 소매업이 아닌 문화 OS(Operating System) 로 진화시켰다.
4. 포스트 코로나 시대, “책 이후”를 상상하는 확장 전략
코로나19로 오프라인 서점업이 흔들릴 때도 성품은 “책 이후(Book Beyond)” 비전을 발표했다. 첫째, 국제화: 2019년 쑤저우·심천·홍콩에 이어 2023년에는 말레이시아·일본 니혼바시(日本橋)에 진출, “아시아 문화 벨트” 구축을 가속화했다. 둘째, 디지털 전환: 앱 ‘Eslite me’로 독립서점·출판사·작가를 연결한 O2O 생태계를 만들고, 구독형 전자책·오디오북 서비스로 신규 독자층을 확보했다. 셋째, 사회적 가치 투자: 서점 공간 10 %를 사회혁신 브랜드 팝업에 할애하고, 연매출 1 %를 청년 창업 펀드로 환원한다. 넷째, 지속가능 디자인: 태양광 패널, 재활용 목재 서가, 탄소 추적 시스템을 도입해 “탄소 중립 서점”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런 확장 전략은 서점 산업의 미래가 **‘책을 파는 곳’에서 ‘문화 경험을 설계하는 플랫폼’**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성품서점의 모델은 한국·일본·동남아 서점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었으며, ‘아시아에서 가장 독창적인 서점’이라는 수식어를 넘어 글로벌 문화 인프라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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