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파리 좌안의 문학 성지: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의 역사
파리 센강 남쪽, 노트르담 대성당을 마주한 골목에는 전 세계 문학 애호가들이 순례하듯 찾는 한 서점이 있다. 바로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Shakespeare and Company)**다. 이 서점은 단순한 책 판매점이 아닌, 20세기 문학의 산실이자 저항과 창작의 상징이다.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의 시작은 1919년, 실비아 비치(Sylvia Beach)가 라탱지구에 문을 열면서부터다. 그녀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출판하며 국제적 명성을 얻었고, 이 공간은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거트루드 스타인, 에즈라 파운드 등 수많은 ‘잃어버린 세대’ 작가들의 지적 피난처가 되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는 1951년 조지 휘트먼이 열었고, 실비아의 전통을 잇는다는 의미에서 같은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 서점은 독립 출판물, 고전 문학, 프랑스어 번역서 등 다양한 문학 서적을 큐레이션하며, 지속적으로 문학적 공동체를 형성해 왔다. 그 역사는 책장 사이사이에 남아 있고, 고풍스러운 책 냄새와 나무 바닥은 여전히 시대를 거슬러 방문자를 맞이한다.
2. 헤밍웨이의 파리 시절: 책과 거리, 그리고 배고픈 청춘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의 대표적인 문학적 아이콘이다. 그가 1920년대 파리에 거주할 당시, 이 서점은 그에게 단순한 독서 공간을 넘어, 정체성과 문학적 열정을 키우는 무대였다. 그의 회고록 《움직이는 축제(A Moveable Feast)》에는 이 서점에서의 따뜻한 기억이 생생히 담겨 있다.
그는 종종 돈이 없어도 이곳에서 책을 빌려 읽었고, 비치는 그를 특별히 배려하며 창작을 독려했다. “배고픈 시절이지만 글쓰기에 대한 굶주림은 더 깊었다”고 회상한 그는, 파리라는 도시의 예술적 열기와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의 자유로운 공기에 매료되었다.
헤밍웨이뿐만 아니라, 이곳은 전후의 유럽 지식인들과 미국 작가들이 부딪히며 새로운 문학을 실험하던 공간이었다. 술집, 골목, 시장, 그리고 이 서점을 오가며 형성된 '잃어버린 세대'의 분위기는, 지금도 파리 문학 여행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핵심이다. 이 서점을 걷다 보면, 마치 그들이 아직도 어느 책장 너머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3. 책 속에서 잠들다: ‘트럼피스트’ 프로그램과 문학 공동체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는 단순히 문학을 소비하는 장소가 아니다. 여기에는 ‘트럼피스트(Tumbleweed)’라 불리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존재한다. 이 프로그램은 전 세계의 문학 청년들이 서점에서 일정 기간 머물며, 서점을 운영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조건으로 숙식을 제공받는 문학 레지던시 시스템이다.
조지 휘트먼은 생전에 약 3만 명 이상의 문학인을 받아들였고, 지금도 연간 수백 명의 트럼피스트가 이곳을 다녀간다. 그들은 단순한 손님이 아니라, 서점의 철학을 함께 살아가는 문학 공동체의 구성원이다. 매트리스 몇 개가 놓인 작은 다락방에서,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밤을 보내며, 이들은 ‘책 속에서 잠드는 경험’을 진짜로 실현한다.
트럼피스트들은 종종 여행자이자 작가, 시인, 번역가이기도 하며, 낮에는 책 진열을 돕고, 밤에는 센강을 바라보며 글을 쓴다. 이 특별한 거주 경험은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를 단지 명소가 아니라, 살아 숨쉬는 문학적 유기체로 만든다. 이 공간은 방문객을 단순한 독자가 아닌, ‘문학의 일부분’으로 편입시키는 힘을 가진다.
4. 문학적 성지순례로서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오늘날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는 전 세계 문학 애호가들의 성지순례 장소로 자리매김했다. 서점 앞에 늘어선 긴 줄과 플라스크를 든 여행자들, 자전거를 세우고 시집을 뒤적이는 파리지앵들의 모습은 이 공간이 아직도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
서점 내부는 촬영이 제한되어 있지만, 그만큼 직접 경험해야 할 가치가 있는 감성 공간이다. 낡은 피아노가 놓인 구석, 누군가 적어둔 문학 노트, 벽을 가득 메운 작가들의 사인과 편지들...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는 시대를 가로지르는 기억의 서랍장이자, 문학이라는 이름의 안식처다.
또한 이곳은 단순히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현재진행형 독립서점의 모범이다. 꾸준히 소규모 출판물과 실험적 문학을 소개하고 있으며, 독립 서점들의 연대와 생존 가능성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파리 여행에서 이곳을 빼놓는 것은, 마치 에펠탑을 보지 않고 돌아오는 것과 같다. 아니, 어쩌면 이 서점이야말로 진짜 파리의 영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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